청계천은 중랑천의 제1지류인 지방1급하천이다. 서울의 서북쪽에 위치한 인왕산과 북악의 남쪽 기슭과 남산의 북쪽 기슭에서 발원하여 도성 안 중앙에서 만나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유로 연장 10.92㎞의 도시하천으로 무교동·광교·장교·수표교 등을 지나서 흘러 내려오는 성북천과 정릉천이 차례로 합류하고, 마장동 견인이동차보관소를 지나 중랑천 본류의 서쪽으로 합류하여 한강으로 흘러들어 간다. 청계천 유역내의 빗물과 생활하수를 전량 하수관거를 통해 집수하여 배수시키는 기능을 갖고 있다.

청계천 유역은 총 유역면적 50.96㎢로 서울의 중심가에 위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1394년 서울이 조선왕조의 도읍지로 정해진 이후 지금까지 600여년 이상 우리 나라의 정치·사회·문화·경제의 중심권을 담당해 온 유서 깊은 지역이다. 청계천과 그지류의 유역을 포함하고 있는 오늘날의 행정구역은 한강 이북의 성북구·강북구·동대문구·성동구·중구·종로구의 총 6개 구에 달한다.

청계천을 햇볕, 맑은 공기, 깨끗한 물이 흐르는 본래의 하천으로 복원하며, 수중과 수변에 생물의 서식여건을 만들고 생태공간을 조성한다. 청계천 복개구조물과 청계고가도로가 철거되고, 복개구조물 내에 있는 각종 시설물이 이설되며, 또한 하수관도 정비된다. 철거과정에서 발생되는 약114만톤의 폐기물은 75%이상 재활용처리된다. 복원된 청계천 양측에는 편도 2차로씩 도로가 건설되고 청계천 남북연결에 필요한 교량이 설치될 뿐만 아니라, 하천 둔치에는 자전거도로와 산책로가 조성되어 시민들이 즐겨찾는 여가, 휴식공간의 역할을 하게 된다.

600년 고도 서울의 역사적, 문화적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광교, 수표교 등 역사유적을 복원하고 이를 서울 성곽, 5대궁궐등 4대문안 문화유적들과 연계, 관광자원화 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된다. 또한 수표교 다리밝기,편싸움, 연등행사등 전통문화가 수변에 조성될 조경공간에서 재현된다. 역사문화가 살아있는 생태하천으로 복원된 청계천은 서울의 대표적인 문화관광지로서 뿐만 아니라 서울시민의 자랑스런 휴식공간이 될 것이다.
 
 
- 광장시장
구한말 국내 정세가 혼미를 거듭하던 중 일본, 중국 등 열강세력의 각축장으로 국운은 풍전등화격이었다.
1904년 고종제위 41년 "을사조약" 체결 후 실질적으로 주권행사는 일본이 장악했고 따라서 경제침략 정책을 기도한 바 그 한 예로서 남대문시장의 경영권 장악이었다. 일본의 경제침략의 제어는 경제입국만이 국권회복의 길이라는 취지에서 동대문 광장시장의 설립에 착안 김종한 외 3인의 발기인의 출연으로 토지, 현금 100,000원의 각출금으로 발족하였다.

부지의 선정은 후보지를 청계천 3가, 4가의 광교, 장교간의 일대를 후보지로 삼고 시장설립을 추진 중 1904년의 대홍수로 중지 후 현 국민은행 청계지점자리와 그 주변을 매입하였다가 한성부와의 환지 교섭으로 현 위치를 시장부지로 확정하였다.

1905년 시장의 명칭을 동대문 시장으로 확정하고 법원에 등기 시장의 경영체법인명은 광장주식회사로 명명하였다. 시장개설은 1905년 7월 5일 한성부의 시장개설 허가로 법원의 등기를 필하고 국내 최초로 시장으로 개설되었다. 발족시 시장의 이모저모를 살펴보면 상거래의 수요공급이 원시적이고 교역 수단의 단조로움으로 인해 당시 시장의 활동과 기능이 한산해서 시장의 개장운영이 1일장, 격일장, 3일장, 5일장, 7일장 등 여러 가지 시장 개장 방식이 있었는데 당 시장의 개설과 함께 상설시장으로 운영하였으니 시장 개척상 선구자격인 효시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시장개설시 주요 거래 상품으로는 주로 농수산물, 신탄 등인데 가평.뚝섬 이천, 철원 등지에서 우마차로 반입하는 소규모의 단조로운 원시적인 시장 기능일 뿐이었으나 현재의 주거래 품목으로는 주단, 포목(한복), 직물(양복,양장지), 여성의류제품, 커텐지, 침구, 수예, 나전칠기, 주방용품, 수입품코너, 청과, 건어물, 제수용품, 생선, 정육, 야채 등으로 상당량 거래 규모를 자랑하는 종합적인 면모를 갖춘 시장이라 할 수 있으며, 현재 세계 관광코스로 지정되어 우리나라를 여행하는 많은 외국관광객들의 경유지로 되어 있음을 자랑할 수 있다.

-동대문종합시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동대문종합시장은 1970년 12월 23일에 당시동양 최대규모의 단일시장으로 출범하였으며, 1985년 2월 23일에 동대문 쇼핑타운을 오픈하여 현재는 A,B,C동 및 쇼핑타운으로 이루어져 국내는 물론 국제적인 쇼핑명소로 성장하였다.서울의 교통중심지인 보물 1호 동대문 앞에 위치한 동대문종합시장은 전국을 상권으로 혼수용 전품목 및 포목, 복지, 양장지, 원사, 커텐, 카페트 등 원단류와 부자재만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3,000여개의 점포를 갖춘 국내 최대규모의 전문 도소매 시장으로서,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 냉난방시설 및 대규모 옥외 주차장을 완비하여 보다 편안하고 쾌적한 분위기에서 고객이 쇼핑을 즐길 수 있다.

 
 
인사동은 전통문화와 현대문화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공간으로 현대와 과거가 만나는 거리이다.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 축제, 문화 행사 등이 열리고 있으며 한국 전통문화를 직접 마주할 수 있는 몇 안 남은 거리이며 오래된 골동품에서 품위있는 도자기, 미술품,전통찻집 등 쉽게 접할 수 없는 한국 고유의 문화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인사동이다.

따라서 무분별한 개발압력과 비문화업종의 유입 확산으로부터 전통문화 업종의 보존과 육성을 도모하기 위해 전국 최초로 문화지구로 지정되었다.
 
 
종묘공원은 시민운동의 대표적인 집회장소중 하나로 많이 알려져 종묘시민공원으로 불리우기도 한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종묘가 공원 뒷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공원맞은편에는 현대식 고층건물이 들어서 있어 공원명칭 그대로 종묘와 연계되어 서울 시내 관광코스로도 잘 알려져 있다. 또한 공원 맞은 편에는 전자상가의 원조격인 세운상가가 위치해 있고 공원 지하에 대형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어 복잡한 도로사정의 서울관광에 자가운전자에게는 공원 및 주변관광에 편리함을 더해준다.
 
 
경복궁은 조선의 정궁이다. 조선의 태조는 1392년 7월 개성의 수창궁에서 왕위에 즉위하여 조선을 건국하고 수도를 옮기기로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태조 3년(1394) 10월에 한양으로 도읍을 옮겨 왕궁을 창건하기 시작하였다. 태조 3년 12월 4일 개토를 시작하여 태조 4년(1395) 9월 경복궁이 조성되었다. 광화문의 해태조각상과 근정전의 기단에 조각된 방위신상들과 경회루 다리 및 영제교의 석교에 설치된 석조조각물들은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조각미술품들이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회루의 루원과 향원지의 연못이 원 형태로 남아 있어 조선의 대표적 명원도 볼 수 있다.